오스만 제국

페툴라 귤렌

오스만 제국 시대 대부분에 걸쳐 (약 1300년~1922년) 술탄 (정치 지도자)과 칼리프 (종교 지도자) 간에는 긴밀한 공생 관계가 지속되었다. 이슬람은 통치자에게 보호를 요청했고, 통치자는 이슬람을 정치적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이용했다.[1] 이에 따라 이슬람과 국가간에는 복잡한 관계가 형성된다.

오스만 제국은 비무슬림에게는 평등권을 부여하지 않는 이슬람 법인 샤리아에 의해 지배되어, 지도적 종교 행정당국 (울레마)이 종교 영역을 넘어, 제국의 교육, 사법 제도를 부분적으로 관장하고 있었다. 울레마는 이슬람 신학교인 메드레세를 운영하고, 여기에서 오스만 관료조직상 많은 하위직 관료가 교육되었다.[2]

19세기 중반 오스만의 개혁은 군사적 패배로 술탄의 지위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국의 유지가 그 목표가 되었다. 특히 종교 당국은 오스만 개혁의 핵심적 반대 세력으로, 제국이 특히 근대화와 모든 시민에게 평등권 부여를 위해 샤리아를 무시하려는 정책에 반대했다. 울레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통치자들은 유럽의 교사로 구성된 유럽식 학교와 샤리아 체제가 아닌 새로운 재판소를 설립했다. 1850년의 상법전은 종교 지도자의 영향을 벗어나 만들어진 최초의 법전이 된다. 신세대의 청년들이 새로 만들어진 유럽식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 일단의 학생들이 청년 오스만 조직을 형성 추가 개혁을 요구하고, 입헌 군주제와 최초의 오스만 헌법의 기반을 세워 개혁을 성취했다.  일년 후, 술탄인 압둘하미드 2세가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유보하자 청년 오스만은 지하조직이 되어 결국 청년 투르크 당으로 발전, 20세기 초기 몇십 년 동안 터키를 공화국 시대로 바꾸는 통일 진보 위원회 (CUP)로 역사에 다시 등장한다.

[1] Balci (2007)
[2] 같은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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